<중쇄를 찍자!> —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J (제이)
7 min readJan 16, 2021

요즘 일드에 푹 빠졌다. 지난번 <저, 정시에 퇴근합니다>에 이어 나의 인생 일드 리스트에 올라간 작품은 바로 <중쇄를 찍자!>*.

<重版出来!>, 2016 TBS. 왓챠에서 볼 수 있다.

만화 잡지 ‘주간 바이브스’의 신입 편집자 쿠로사와 코코로를 중심으로 편집자, 만화가 등 출판 업계의 모습을 그린 드라마다.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지만, 10개의 에피소드는 냉혹한 현실을 날카롭게 보여주기도, 상처받은 이들을 조용히 위로하기도 하며 전개된다.

*원제인 ‘중판출래’는 인쇄한 책이 전부 팔리고 새롭게 찍어낸다는 뜻. 출판업계 종사자들의 가장 큰 목표이다.

일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

쿠로사와는 ‘코구마(小熊 : 새끼곰)’라는 별명답게, 매사 씩씩하고 열정 넘치는 신입사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모두가 쿠로사와처럼 파이팅 넘칠 수 없다는 것을. 극중 ‘고이즈미’와 ‘야스이’는 그러한 현실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영업부 사원 고이즈미의 별명은 ‘유령’이다. 매사 의욕없고 형식적인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영업은 고이즈미가 하고싶은 일도 아니었고, 그렇기에 아무런 애정도 미련도 없다.

그러던 중 그는 쿠로사와와 함께 신간 ‘민들레 철도’ 영업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고, 그녀의 열정과 진심이 전해지는 모습을 보며 고이즈미는 조금씩 변화해간다. 그렇게 모두가 합심한 결과, ‘민들레 철도’는 중판에 성공하며 고이즈미는 비로소 자신의 일을 인정하고 보람을 느낀다.

지하철에서 자신이 담당한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며 울컥한 고이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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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사와의 편집부 동료 야스이는 실적 1위의 에이스지만, 그에게 만화란 일 이상 그 무엇도 아니다. 만화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 근무시간 외 연락 절대 금지, 최고의 작가는 돈을 많이 벌어다주는 작가! 쿠로사와는 그런 야스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냉소적인 것은 아니었다. 사실 야스이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일을 사랑했지만, 자신이 맡은 잡지가 폐간되는 상처를 겪으며 동료와 가족까지 잃을 뻔했던 것.

야스이의 사정을 알고 있는 편집장은 “현실적인 네가 있기에 다른 동료들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라며 그를 다독인다.

모두가 이상만으로 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고이즈미처럼 좋은 기회로 변화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될까? 드라마 속 다양한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일을 대하는 태도는 현실의 우리를 그대로 비추고 있다.

매우 공감됐던 이오키베 부편집장과 쿠로사와의 대화

포기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

일본의 만화 시장 규모는 전세계 1위로, 그만큼 도전하는 사람은 많지만 데뷔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설령 데뷔에 성공하더라도 일주일마다 돌아오는 마감, 독자들의 앙케이트 조사, 신작 연구 등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만화계의 현실이다.

‘누마타’는 인기 만화가 ‘미쿠라야마’ 선생님의 어시스턴트다. 나름 주목받는 신예였지만, 좀처럼 프로 데뷔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올해 마흔 살이 되었다. 언젠가는 자신의 작품을 알아줄 편집자를 만날 거라는 희망과 함께, 오늘도 그는 만화를 그린다.

그런 누마타의 앞에 나타난 ‘나카타’. 새로운 어시스턴트로 들어온 그는 한 번도 만화를 그려본 적 없지만, 천재적인 감각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다.

그런 나카타를 보며 오만 가지 감정이 교차하던 누마타. 어느 날, 나카타는 우연히 누마타의 숨겨진 콘티를 보게 되고, 유일하게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며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며 누마타는 20년 동안의 어시스턴트 생활을 정리한다.

미쿠라야마 선생님께 마지막 큰절을 올리는 누마타

이루어지지 않는 꿈을 좇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그리고 현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꿈을 내려놓는 과정까지, 감히 그 심정을 헤아릴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누마타가 어디에서든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작품을 만든다는 건 자신의 마음을 계속 들여다보는 일이야. 아무리 추악하고 한심해도 마주 봐야 한다네.”

극중 미쿠라야마 선생님이 누마타에게 한 말이다. 이는 창작자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지 않을까?

비록 계획했던 대로 세상이 흘러가지 않아도, 최선을 다했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어찌됐든 시간은 흘러가고 삶은 계속된다. 그 과정에서 겪는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신을 온전히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성장한다.

결코 쉽지 않지만, 용기를 내어 한 발자국 내딛으면 끝에는 자신만의 중판출래(重版出来)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으며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살아간다.

“누군가를 위해 일한다. 나를 위해 일한다. 뭘 위해서라도 상관 없다. 누군가가 움직이면 세상은 변한다. 그 한 걸음이 누군가를 바꾼다. 매일은 계속된다. 오늘도 또다시 살아간다.”

명대사

  • “항상 자신에게 물어봐라. 내 일이라고 가슴 펴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세상에 내보내고 있는지.”
  • “천재는 모두에게 꿈을 보여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더욱 주위에 그림자를 만들고 마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 “이상만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 “책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건 아닐 수도 있어요. 읽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겠죠. 하지만 단 한 권의 책이 인생을 움직일 때도 있어요.”
  • “나에게 있어 만화가 초라한 현실에서 구해준 튜브였던 것처럼, 만화가에게는 독자라는 튜브가 필요하다. 그 튜브를 건네주는 게 나의 일이다.”
  • “꿈을 좇는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어요. 만화가를 목표로 하는 동안은 특별하게 있을 수 있었어요. 특별한 사람으로 있고 싶었어요.”
  • “우리가 파는 건 책이지만 상대하는 건 사람이야. 전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마. 우리의 마음을 그분들이 받아 손님들에게 전해주시는 거다.”
  • “만화가 재미있다고 해서 꼭 잘 팔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서 움직이는 영업, 협력적인 담당 편집자, 작품을 사랑하고 작품을 밀어주는 서점 직원분들, 이 세 사람이 손을 꼭 마주 잡는다면 작품이 대 탈바꿈할 가능성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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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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